제1의 한강의 기적

제1의 한강의 기적을 보면 가장 비교가 되는것은 1988년전 한국과 1988년후의 한국이다.  1988년전 한국은 동정을 받는 불쌍한 나라였는데 1988년후 한국은 감히 평가를 못하는 선진국이다.  전혀 매듭이 안되는 다른 두나라다.  너무 갑작스런 변화에 궁금해하던중 아들과 방문한 일본 해군 박물관에서 일본 해군의 역사를 읽다 답을 얻었다.

국제정세에 무지했던 일본은 1853년에 도쿄항에 나타난 미해군 페리 제독의 함대에 밀려  굴욕적인 통상조약을 미국이 시키는대로 체결한다.  1875년에 일본해군은 국제정세에 무지했던 한국에게 영국에서 사온 '운요호' 군함을 인천항에 끌고와서 미해군이 일본에게 했던 똑같은 방식으로 굴욕적인 통상조약 '강화도 조약' 을 체결시킨다.  즉 일본해군은 22년만에 미국해군을 fast follow 한것이다.

일본해군의 진짜 눈부신 발전은 일본의 최고의 해군장군 도고제독 시대 부터였다.  국제정세에 밝은 그는 과감히 영국의 첨담 해군기술을 도입해오고 해전때는 승전을 기원하는 제사를 이순신 장군에게 드린다.  외제에 거부반응이 없는사람이다.  그는 영국해군대학에서 배운 해군전술과 영국에서 수입해온 '미카사' 최첨단 군함으로 중국, 러시아와 싸워 이긴다.  도고제독은 유학생이었다.  도고제독을 포함한 유학생들은 메이지 유신때 일본을 갑작스럽게 아시아의 최강국으로 둔갑시킨다. 

Studies in Britain (1871–1878)

Sino-French War (1884–1885)

Sino-Japanese War (1894–1895)

Russo-Japanese War (1904–1905)

나는 1988년 제1의 한강의 기적은 국비 지원으로 첨담기술을 배우고 돌아온 유학생들의 공이 크다고 본다.  제2의 한강의 기적이 보인다.  지금 한국에는 유학생, 타국 이민자와 교포 역이민자들이 구름처럼 모이고 있다.  이들은 선후배 관계론에 박혀 있지않다.  '자신'이라는 아이덴티티가 있어 '자신감'이 있는 사람들이다.  Risk taking 이 본능화된 사람들이고 전세계를 돌아다녀 시야가 넓은 사람들이다.  이들은 대기업도 처음에는 스타트업이었고 정부는 배푸는 만큼 이상으로 세금을 가져가는 곳이라는 이치를 잘 이해하고 있다.  정부에 기대지 않고 대기업에 대한 로망이 없다.  이들이 제2의 한강의 기적인 스타트업 창조경제를 이끌고 가는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